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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3, 2012

마이크 타이슨(Michael Tyson )







마이크 타이슨

Michael Gerard Tyson

출생 1966년 6월 30일
데뷔 1985년 3월 6일
은퇴 2005년 6월 12일

"이건 그리스 비극이군. 문제는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이야."
미국의 前 복싱 선수.

2살때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소년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더 화이팅에도 언급되는 비둘기 사건은 실화로, 사람 패는 맛(...)을 깨닫고는 싸움질을 일삼았던 듯.
하지만 어린 시절에 유약했단 건 사실이 아니며 강도짓을 일삼는 등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과 나이프로 찌르며 놀았다(...)고 하니 정상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명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와의 만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복싱을 시작했다.
헤비급 복서 치곤 키가 작은 5피트 10인치-약 178cm-로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 트레이드 마크가 된 체중 이동을 통한 강렬한 연타로 1985년 데뷔 이후 연전연승을 거듭,
결국 1986년 11월 26일 약관 20세의 나이로 트레버 버빅를 쓰러뜨리고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국내에선 핵주먹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복싱 역사상 강력한 챔피언은 여럿 있지만 그처럼 센세이셔널한 인물은 없어, 아직도 호사가들이 최강 논쟁을 벌일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빠른 성공만큼 몰락도 급히 닥쳐왔다.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커스 다마토가 사망하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어리숙했던 그를 노리고 사기꾼들이 접근했다.
주위에 아부꾼만 가득차게 되자 점점 타락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대중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유명한 강간 사건은 돈을 노린 꽃뱀의 소행이라는게 거의 확실했지만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3년 형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스타성이 있는 선수인지라 감옥에서도 특례를 받아 훈련을 할 수 있었다.
형을 살고 나온 후, 다시 재기에 나서서 1996년 9월 6일 WBA 챔피언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그러나 방어전에서 복싱사에 길이 남을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깨무는 사고를 일으키고 핵이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과 더불어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몇 번을 복귀했으나 연전연패를 거듭, 마침내 2005년 6월 12일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TKO 패배를 당한 직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프로 통산 50승 6패 2무효 44KO.
특기할 만한 대목을 꼽자면, 데뷔후 38전째 최초로 패했다.
즉 데뷔 직후 37 연승. 여기에 20전째 처음 판정승을 거뒀다.
말하자면 데뷔 직후 19연속 KO. 괜히 센세이션을 일으킨 게 아니다.
스타성 하나는 대단해서 복귀 후엔 90년대 당시 경기당 평균 대전료가 3000만 달러가 넘었고 홀리필드전에선 한 경기 대전료가 5000만 달러를 넘겼을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흉폭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경기 스타일은 물론이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변도 대단해서 당시 엄청난 팬들을 몰고 다녔다.
그러나 성격 탓에 아내를 두들겨 패고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그야말로 낭비벽이 대단해서 현재는 파산 상태나 다름없다.
때문에 여기저기 이벤트에 얼굴 내비치는 것으로 먹고사는 중. 하지만 내 평생 최고의 펀치는 마누라에게 날린 보디 블로우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인생에 한점 후회도 없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최강자 떡밥의 단골손님이지만 실제 복싱팬 사이에선 평가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당대 최고 실력자인 홀리필드, 레녹스와 싸워 모두 패했고 무엇보다 자기 관리를 잘못하여 전성기가 3년이 채 안될 정도로 짧았다.
격투 스포츠의 메인스트림인 미국에서도 타이슨의 평가에 대해 마찬가지긴 하지만 신체 능력과 기량 만큼은 확실히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약물 중독과 수감으로 몰락하기 전까진 무적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미국에서도 역대 최강의 복서를 꼽을때 타이슨의 전성기는 반드시 언급되는 수준.
최근 외국의 동물관련 프로에 출연해서 새 키우는 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사실 마이크 타이슨이 원래부터 새를 좋아했고 복싱 안할 땐 늘 새 키우기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경력이 워낙 길어서 이 분야에선 준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키우는 새가 많다보니 소음 때문에 가끔 다른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엔 말썽안피우고 사람답게 살아서 많은 팬들이 안도해하고 있다.
홀리필드와도 화해한 상태.
2012년 갑작스레 스파이크 리 감독과 뉴욕 브로드웨이와 라스 베가스에서 자기자신을 주제로한 원맨쇼를 진행했다.
공연 직전 그의 극장 앞에서 배트맨 상영관에서와 같이 총기난사를 하겠다는 글이 타이슨의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타이슨의 패러디
더 파이팅의 마쿠노우치 잇뽀는 타이슨이 가진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차용한 캐릭터다.
파이팅 스타일도 비슷하며 일보 역시 타이슨을 롤 모델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커스 다마토와 타이슨의 관계는 압천 관장과 일보의 관계와 많이 닮아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2의 칙칙이 M.바이슨도 그의 패러디이다.
이름부터 사실 마이크 타이슨의 적절한 변형.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식한 악역이라는 컨셉에 타이슨을 연상시킬 요소가 너무 지나치게 많았던 탓에
이후 대대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외수판에서 베가, 발로그와 서로 이름이 바뀌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
타이슨의 선풍적 인기와 스트리트 파이터의 흥행덕에 웬만한 격투게임의 흑인 복서캐릭터들은 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라의 문3부에서 아리오스 킬레인과 그의 스승의 과거사는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의 관계과 비슷했다.
후에 매니저가 되는 남자도 완전 돈 킹과 판박이. 다른 점이라면 외견은 당연히 다르고 스승이 사망했을 때 타락하지 않고 절대로 패배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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