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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19, 2012

John Lenon



John Lenon
인간으로 태어나 신화가 된 팝 아티스트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어떻게 변해있을 지 궁금해지는 팝 아티스트들은 아마도 많이 있을 것이다. 뭐 다른 장르의 스타들 역시 그러하듯이 존 레넌의 요절을 안타까와하는 이들은 많이 있을 것이므로...그러나 나에게 요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팝 아티스트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존 레넌을 고를 것이다. 이유를 묻는다면 그다지 그럴 듯한 대답을 찾아내긴 쉽지 않을 듯하지만 그가 지난 1980년에 죽은 것은 물론 불행한 일이지만 그로 하여금 불멸의 명성을 가져다 주는 데에는 분명히 성공한 것 같다. 그가 죽어서 다행인 사람을 한 명 더 고르라면 아마도 오노 요코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존 레논>
1940년 영국 리버풀에서 존 윈스턴 레논 탄생(1969년 존 오노 레논으로 개명)
1956년 비틀스의 전신인 쿼리멘 결성하고 폴 매카트니와 만남
1957년 레넌, 예술학교에 입학하고 2년 뒤 중퇴.
1960년 밴드 이름을 비틀스로 최종 확정하고 함부르그와 리버풀의 클럽에서 연주.
1962년 비틀스 최초의 싱글 <Love Me Do> 발표
1964-1966년 'I Wanna Hold Your Hand '가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을 필두로 전세계적인 '비틀매니아' 현상 발생. <Rubber Soul>(1965), <Revolver>(1966) 등을 통해 팝 음악을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음.
1967년 비틀스 최고의 음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발표 및 플라워 무브먼트 전개.
1968년 비틀스 멤버들, 인도에서 명상수행을 받음
1969년 존 레넌, 일본계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재혼하고. 반전 캠페인 <War Is Over>를 전개
1971년 존과 요코, 뉴욕으로 이주. 미시간에서 투옥된 좌파 활동가 존 싱클레어 구명을 위한 자선공연 참여.
1972년 좌파 활동가 제리 루빈 등과 함께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재선 반대 운동을 전개.
1973년 미국 이민국, 레논에게 추방령을 내림.
1976년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FBI의 감찰을 받고 소송 사건으로 시달림.
1975년 존 레넌, 전업주부가 된다고 선언하고 은퇴.
1980년 마지막 앨범 <Double Fantasy>를 발표하고 컴백한 직후인 12월 자택 앞에서 '광적인 팬' 마크 채프먼의 총격에 의해 살해됨.
1996년 레넌의 데모 테이프를 복원하여 재편집한 'Free As A Bird'등이 수록된 <The Beatles Anthology vol.1-3> 발표.
1998년 레넌의 두 번째 아들 션 레논, 데뷔 앨범 <Into The Sun> 발표.



 시대를 초월해서 비틀즈 매니아들, 일명 비틀 매니아들을 분열시킬 소지가 있는 유일한 사건은 존(John)파냐, 폴(Paul)파냐 하는 논란일 것이고,
거기에 덧붙여 비틀즈 해산의 가장 큰 요인을 누가 제공한 것이냐는 논란일 것이다.
비록 폴 매카트니를 공격하는 이들의 견해
- 존 레넌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들에 비해 그의 노래는 발라드 풍의 통속적 가사들 중심이라는 -
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폴 매카트니 음악적 업적은 거의 항상 존 레넌을 능가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본인이 존(John)파이기 때문에 균형감각을 지키기 위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대한 허풍선이 몽상가 - 존 레넌

본명 존 윈스턴 레논 존 레논이란 아티스트를 말하면서 비틀즈를 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존 레논의 음악적 성취란 것은 비틀즈 시절에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후 솔로로 독립하여 활동한 존 레논의 음악들 역시 아름답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동그란 안경테 속에 평범한 모범생 혹은 길다란 얼굴에 다소 몽롱해보이는 눈동자의 존 레논(John Lennon)을 우리가 기억하고 사랑하게 되고,
그를 신비로운 인물, 반전운동가 등으로 기억하게 만든 것은 역시 비틀즈(Beatles)의 멤버로서가 아닌 존 레논이란 한 명의 솔로 아티스트였다.
영국 리버풀 노동 계급의 결손가정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음악에 몰두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정치적인 이념과 사상을 반영하기도 했던 존 레논은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가사에 선율이 아름다운 곡들로 그 작곡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은 로큰롤 음악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실력에 안주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때문에 그는 비틀즈에서의 엄청난 업적에 비해 솔로로서의 활동은 비교적 간과되기도 했다.

비틀즈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미 상업주의의 최고봉에 올라있었을 당시에도 그의 반전주의적이고 기존 권위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했으며,
66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비틀즈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때 기독교도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비틀즈 활동 중에도 솔로로서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존 레논은 68년,
그의 연인이자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인 오노 요코(Ono Yoco)와 실험적인 사운드로 이루어진 [Unfinished Music, No. 1: Two Virgins]를 발표했다.
두 사람의 누드를 실은 앨범 자켓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이후 그는 요코와 결혼하고 그들의 신혼 여행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반전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에 반전사상을 담은 'Give Peace a Chance'를 포함한 [Unfinished Music, No. 2: Life with the Lions and The Wedding](69)을 발표한 그는
우노와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베이시스트 클라우스 부먼(Klaus Voormann), 드러머 알란 화이트(Alan White)와 함께 플라스틱 우노 밴드(Plastic Ono Band)를 결성해
'Cold Turkey'를 발표하지만 미국과 영국 어디서도 톱 텐에 오르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받은 MBE 훈장을 반환하고 영국과 미국의 비아프라(Biafra), 베트남 참전에 항거한 존은
요코와 함께 12개 도시를 다니면서 '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화를 위한 캠페인을 지속한다.
70년 'Instant Karma'로 UK/US 차트 10위에 오르면서 히트를 하게 된 그는 폴의 비틀즈 해체 발언에 분노해 [John Lenon/Plastic Ono Band]라는 정식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71년 또 다른 국가 부정적인 사상을 담은 싱글 'Power to the People'을 발표한 그는 그해 가을 [Imagine]을 선보인다.
타이틀곡으로 히트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은 다시 정치적인 활동가로 돌아가 아비 호프만(Abbi Hoffman), 제리 루빈(Jerry Rubin)같은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을 옹호했고,
72년 뉴욕 히피밴드 엘러펀츠 메모리(Elephant's Memory)와 더블 앨범 [Sometime in New York City]를 발표했다.
그러나 정치사상을 담은 곡들로만 이루어진 이 앨범은 그 단순함으로 혹평을 받았고,
저조한 판매고를 보임은 물론 그의 명성에도 손상을 가했다.

이후 마리화나 소지죄로 미국 영주권이 거부되고 74년 오노와 이혼하게 되면서 LA로 거주지를 옮긴 레논은 소위 'lost weekend'라 불린 1년 반 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도 존의 음악 작업은 계속되었고, 74년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Night'라는 엘튼 존(Elton John)과 공동 작업한 곡으로 히트를 기록한 [Walls and Bridges]를 발매한 후,
그는 다시 오노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가졌다.
75년 [Rock & Roll]을 발매하고 76년 영주권 획득 이후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에 참여한 존은 이후 음악에 손을 떼고 가사 작업에 매진한다.
1980년 오랜 침묵을 깨고 게펜 레코드사(Geffen Records)와 계약을 맺은 그는 [Double Fantasy]를 발매해 호평을 얻고
앨범과 싱글 '(Just Like) Starting Over'를 나란히 차트에 올린다.
그러나 새로운 활동으로 재개한 그의 창창한 앞날은 80년 12월 8일 암살자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Mark David Chapman)의 총격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비틀즈 이후 존 레논의 음악은 상업적 가치와 예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그다지 뛰어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록 스타로 자리매김한 70년 초 혁명적인 활동가로 정치시위에서 TV 토크쇼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사회사상을 반영함으로써 음악과 삶에 있어 극단을 취했던 그는,
사후 약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있다.

존 레넌: 팝 스타가 팝 스타덤과 싸우는 방법

존 레논의 한 사람의 이름은 '한 시대'와 일치한다.
"날 사랑해 줘(Love Me Do)"라는 백인 남자애의 '사랑타령'은 '1960년대'의 시작을 알렸으며,
그가 죽은 1980년은 그 시대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임을 '확인사살'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는 후환이 두려울 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의 신체에 체현되기에는 너무도 거대하고 복잡한 내면 세계를 갖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외부로 드러난 빛나는 업적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일은 팝 칼럼니스트들에게 맡길 일이고,
내면의 깊은 세계를 탐험하여 심오한 해석을 내리는 일은 레논 컬트주의자들에게나 맡길 일이다.
아니면 (예를 들어 홀랜드 오퍼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내리는 해석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떤 해석에 대해서도 "그건 레논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라고 핏대세울 필요는 없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그는 '누구나 알고 있는 최고의 팝 스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보통의 팝 스타보다 많이 특이한 점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레논이 팝 스타이면서도 팝 스타덤과 싸운 존재였다는 점이다.
이 게임을 간략히 묘사해 볼 수는 있을까.

변두리 소도시의 노동계급의 가정(그것도 '결손 가정')에서 태어나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애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게임의 전주곡이다.
따분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통로가 '록 음악을 연주하여 팝 스타가 되는 것'이라는 충동이 발생하는 것이 다음 순서다.
록 음악은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진실한 감정'도 표현할 수 있다는 예술가적 자의식이 발생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시적 가사와 인상적인 멜로디를 만들 줄 아는 인물이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그들'의 자각이 탄생하면서 게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촬영을 위한 그림이 받쳐주고, 유능한 조력자들을 거느리고 있고, 위트와 아이러니를 섞은 '말발'까지 겸비한 인물이라면 말이다.
영광스러운 시절은 1962년부터 1969년까지 8년간 지속되었다.
레논의 진면목은 비틀스(Beatles) 시절이 아니라 혼자(아니 오노 요코와 둘이) 된 뒤의 비참했던 시절에도 드러난다.
그는 절박한 상황에 빠졌을 때조차 진정한 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자면, 레논에게 로큰롤의 제 1원리는 '쾌락 원리'였고,
언젠가는 순수한 환희라는 로큰롤의 꿈과 이상이 실현되리라고 믿었다.
LSD 복용으로, 동양 신비주의로, 아방가르드 예술로, 급진적 좌파정치로, 록 슈퍼스타덤으로, '가사 노동'으로 좌충우돌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팝 스타덤과의 부단한 싸움의 과정이자 '영원한 마인드 게임'이었다.
그래서 1980년 그가 공백을 청산하고 음악계에 컴백하자마자 '어이없이' 살해된 사실은 영원히 '미완의 꿈'을 남긴다.
팝 스타덤과의 게임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가 동원한 수단은 종종 황당하고 어이없는 것이었다.
1969년 오노 요코와의 재혼 뒤 신혼여행 중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행위를 반전 캠페인(이른바 '베드 인 bed in')이라고 '주장'한 일,
70년 토론토에서 평화 페스티벌 개최를 준비하면서 "외계인을 초청하자"고 제안한 일,
1973년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누토피아(Nutopia)라는 이름의 '건국선언'을 한 일은 큰 예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천당도, 지옥도, 국경도, 소유도, 종교도 없다"는 그의 '상상'이 정말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인민들"에까지 미쳤는지는 의심스럽다.
그가 정말 "소유가 없는 상태"를 상상했는지도 의심스럽고, 그가 죽기 전 가졌던 꿈이 어떤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레논은 좋게 말하면 몽상가이고 나쁘게 말하면 허풍쟁이였다.
그래서 그가 위대하다면 최고의 팝 스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삶의 목표가 위대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자신이 서있는 곳에 대해 극한적으로 사고하고 끊임없이 싸웠다는 점이다.
하찮을 수도 있는 팝 스타가 영원한 문화적 아이콘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팬들의 비루한 삶을 조장하는 세력과 대리전을 치른다는 상징작용을 안겨줄 때이다.
레넌은 이런 대리전의 전위였다.
워낙 변덕스러워서 부하들이 좀 고생하긴 했지만.

<신현준 : 대중음악평론가>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록의 시대 - 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 알랭 디스테르 지음/ 성기완 옮김/ 시공 디스커버리 038/1996년
  - 서울대 출신 시인이자 음악컬럼니스트, 그 자신이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는 성기완이 프랑스의 록음악 전문 칼럼니스트인 알랭 디스테르의 책을 번역하여 옮긴 것이다. 책의 중간중간에 우리로서는 다소 생소한 프랑스 록음악과 록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사족처럼 끼어든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풍족한 사진 자료와 함께 우리들로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록음악의 역사를 읽어볼 수 있다.
 『은밀한 사전』/ 카탸 두벡 지음/ 남문희 옮김/ 청년사/ 2001년
  - 가끔 남의 배꼽 아래의 역사에 대해서 파헤친 르뽀 성격의 글들을 읽을 때, 그 사람이 점잖은 척하는 인물일수록 충격이 클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심리치료 카운슬러로 일하고 있는 카타 두벡이 서구 역사상 이름만되면 알법한 인물들의 배꼽 아래 역사를 추적해 사전처럼 엮은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그다지 애정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케네디의 경우,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느라 공무는 언제 보았을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아야한다. 그러지 않고는 흥미위주로 전락하기 쉽다.(어쨌거나 재미는 있다. 가십은 항상 씹을 만하지 않은가? 미장원이든 이발소든 간에 말이다.)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임진모 지음/ 창공사/ 1994년
  - 클래식에 <이 한 장의 명반>이 있다면 팝에는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이 있는 셈이다. 오랫동안 팝컬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임진모 씨가 만든 책답게 내용이 충실하다. 한 가지 단 점이 있다면 시대사나 사회사적인 접근이 부족하여 그 음반이 어째서 시대를 빛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적당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신현준 지음/ 문학과 지성사/ 1997년
  - 록 음악은 그 하위 장르가 많기로 유명한 음악 장르이기도 하다. 앞의『록의 시대 - 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의 경우가 록음악사에 관한 책이라면 이 책은 록 음악의 장르에 대한 책이다. 블루스로부터 펑크 음악까지 록 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발렌타인의 존 레논
- 혜진님이 운영하는 존 레논의 팬페이지입니다. 생긴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예쁜 페이지더군요. 자료도 충실합니다. 당근 쿨사이트죠. 추천합니다.(한글)

비틀즈
- 설마 존 레논이 비틀즈의 멤버였던 거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시겠죠.
내용도 충실하고 웹 디자인도 비틀즈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생생한 페이지입니다.
쿨사이트냐구요. 말밥이죠. 게다가 아주 충실한 링크 페이지들을 제공한 답니다.
인터넷을 헤매고 다닐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한글)

인스탄트 카르마
-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꼬, 션 레논, 줄리안 레논 등에 대해서 함께 다루고 있는 사이트입니다.
한국인이란 입장에서 일본 출신인 오노 요꼬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가 다만 일본 출신이란 점 때문만은 아니고요. 레논의 전부인인 신시아 레논은 없군요.
그렇다면 제가 다뤄봐야겠군요. 쓸데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존 레논이 한국 여인과 결혼했다면 더 잘 살다가 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랬다면 그의 아들은 하버드나 스탠퍼드 같은 대학을 가서 지금쯤 음악은 안하겠지만

존 레논 파일
- 단촐하지만 깔끔한 웹 구성이 돋보이는 페이지입니다.
존 레논의 사진을 베이스로 홈주인이 직접 했다는 디지털 이미지 합성도 멋있군요.(영문)

Bagism  - 존 레논이 살아 생전에 워낙 돌출적인 행동을 많이 했지요. 그가 새로운 이즘을 들고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위의 페이지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습니다만 존 레논의 팬 페이지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영문)


출처:http://windshoes.new21.org/music-john%20len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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