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21, 2012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바람구두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이들은 대개 다 느끼는 바이겠지만 칙칙하다.
(이 말의 표현이 좀 약하다는 분들은 암울하다던지 캄캄하다고 말해도 좋겠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취향 탓인데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영화들도 대개는 아주 칙칙한 것들을 좋아한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 중에서는 <비열한 거리>를, 그리고 게리 올드만 주연의 영화 중에서는 <로미오 이즈 블리딩>을, 빔 벤더스의 영화는 <파리 텍사스>를, 그밖에도 <네이키드>, <길> 등등
좋아하는 영화들도 거의 다 그런 부류들이다.
미술쪽은 또 어떤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고, 에드바르트 뭉크, 구스타프 클림트, 에셔가 그렇듯이 모두가 그로테스크하거나 아니면 어둠의 정조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라는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들면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주된 정조가 역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제국의 변경(邊境)에서 성장한 나 나름의 자의식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은하철도999>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자. 마쓰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의 밤>이란 일본 동화작가의 원작을 모티브로 새롭게 창조해 낸 애니메이션이다.
<천년여왕>, <캡틴 하록> 과 함께 3부작을 이루고 있으며, 소년 데츠로와 메텔의 우주 여행을 통한 성장을 다루고 있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러시아 아이들의 놀이명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한다.
정확히 어떻게들 하고 노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대충 상상해보자면 우리들의 <얼음, 불> 혹은 <얼음, 땡> 놀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놀이를 해보지 않고 성장한 불우한 아해들을 위해 설명해보자면 술래(아, 참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가 다른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다가 잡힐듯하면 '얼음'하고 외치며 그 자리에 멈춰선다.
이 때 움직이면 안된다.
'얼음'이라고 외치는 그 순간의 동작 그대로 있어야 하고, 다른 친구가 '불(땡)' 하고 와서 쳐주기 전까지는 그런 상태가 계속된다.
'불'하고 와서 손대줄 친구가 없거나 다른 친구가 미처 '얼음'하고 외치기 전에 술래의 손에 닿으면 그 친구가 그때부터 술래가 되는 놀이다.
요새 거리에서 이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다들 학원으로, PC방으로 혹은 BB탄 권총으로 경찰특공대 놀이나 하거나 그도 아니면 롤러블레이드, 퀵보드에 몸을 맡긴 채 위험천만의 거리를 질주한다.
지금 이런 시점에서 그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우리 전래 놀이를 살려야 한다든지 우리 옛놀이가 얼마나 인간과 인간사이의 유대감을 증진시키고,
연대의식을 강화하는지 아니면 놀이를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동안에 세대와 세대 사이의 이해와 존경이 싹트는 통로가 될 것인지를 말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고루한 일이다.
몇몇 아이들에게 우리 옛놀이를 가르쳐준다고 그 놀이들이 부활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어차피 현재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BB탄 권총이, 롤러블레이드, 퀵 보드가 놀이로서
더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만큼 혼자 노는 데 더 익숙하다.
성장영화 아닌 성장영화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이렇듯 아직 어린 나이에 세상의 모든 것을 혼자서 깨우쳐 버린 조숙한 혹은 조악한 어린 친구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우리는 아주 많은 성장영화와 성장소설들을 보고 읽고 있다.
최근에 이 영화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영화 두 편이 우리나라에서도 제작되었는데 <나쁜 아이들>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그런 영화라고 생각된다.
<나쁜 아이들>에 대해서는 많은 평론가 그룹이 상찬했다지만 나로서는 별로 언급할 가치가 없는 영화라는 것이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대해서는 나름의 성과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단순히 성장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성장소설(Bildungsroman)에서 'bildung'은 동사 '형성하다(bilden)'의 명사형으로 한 인간의 자아 형성을 의미하는 것인데,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그런 자아 형성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한 인간의 자아가 망가져 가는 가를 냉정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본디 성장 소설, 성장 영화는 주인공이 세상과의 갈등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와의 화해를 통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발레르카'와 '갈리아'는 끝끝내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다.
'갈리아(디나라 드루카로바)'는 죽고 '발레르카(파벨 나자로프)'는 여전히 사회 밑바닥을 헤맨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성장 다큐멘터리 영화로 생각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성장영화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은 프랑소와 트뢰포의 <400번의 구타> 그리고 <은하철도 999>이다.
(<은하철도 999>를 단순히 '성장영화'라고 해버리기엔 어쩐지 좀 그렇지만 이 만화영화와 함께 성장해온 결과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성장에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늙어 죽는 것도 역시 성장의 연장선으로 보면 '성장'이 아닌가?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이 영화는 일련의 사람들이 어두운 갱도를 빠져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죄수와 일본군 패잔병,‘보드카 없이는’살 수 없는 탄광촌 사람들을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모두 얼굴에 탄가루를 묻힌 채 “절 용서하세요 어머니. 또 유죄판결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형량이 길어요”라는 무기수의 노랫소리가 퍼지면서
막장에서 광부들이 흩어져 나오는 식이다.
소비에트 인민이나 죄수 할 것 없이 모두가 이곳으로 유배당한 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 탄가루가 묻어날 것 같은 어두운 색조의 아름다운 흑백화면으로 일관한다.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이 돈이 없었던 탓이었겠지만) 때는 전쟁이 끝난 1947년 스탈린 시대의 소련, 블라디보스톡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러시아에서의 이 '멀지 않은' 이란 개념은 우리와는 또 얼마나 다른 물리적 거리일까?) 스촨(수청) 지방의 탄광 마을이 그 배경이다.
(최근 소설가 이원규 선생의 글을 읽다가 이 쓰촨 지방이 우리 독립군의 주요 주둔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일본인 포로수용소>가 있고, 또 다른 러시아 죄수들이 머물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분명히 조국 소비에트를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는데 일조했을지도 모를 탄광이 있으며 그 당시에 지어져 종전 후에는 사실상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막사가 있고,
그 막사 안에서 살고 있는 신산한 사람들의 삶이 있다.
일본인 포로는 언제 본국으로 송환될지 모르는 채 낮은 목소리로 일본 노래를 부른다.
발레르카에겐 같은 스촨 마을 사람들 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인 이 일본인 포로에게서 오히려 동류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전체적으로 음울하게 깔리는 이국풍의 노래는 그런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열 두 살의 꼬마 악동 발레르카는 선생님의 만년필을 훔치고, 화장실에 이스트를 집어넣어 학교를 온통 부풀어오른 똥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발레르카에게는 아들에게도 서슴없이 자신을 싸구려 창녀라고 말하는 씩씩한 엄마가 있다.
그의 엄마 니나는 술집 바텐더를 하며 생계를 위해 하룻밤에 5루블을 받고 매춘을 한다.
발레르카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미운 털이 박힌 장난꾸러기이고 그 엄마만큼이나 이곳 생활에 이골이 났지만 조용하면서 강한 여자, 갈리아가 있다.
발레르카는 이 갈리아를 좋아하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는 어린 소년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러시아판 일수도 있는 이 두 아이는 원래 는 서로 경쟁자의 입장이다.
어느날 발레르카는 여자친구 갈리아가 수완좋게 차(茶)를 파는 것을 보고 자신도 차 주전자를 들고 벼룩시장에 나가 차를 판다.
그런데 이 소년과 소녀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거기엔 어떤 낭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저럭 모은 돈으로 꿈에 그리던 썰매를 장만하던 날 수용소 앞에서 썰매를 도둑맞는다.
다음날 발레르카는 갈리아의 도움으로 겐카의 집에 몰래 들어가 썰매를 훔쳐온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화물 열차에 올라탔다가 열차 기사인 겐카 아버지에게 들켜 실컷 두들겨 맞는다.
거리는 온통 오물로 그득하고 학교는 발레르카에겐 지옥과 같다.
며칠 뒤 발레르카는 학교 화장실에 이스트를 뿌린 일이 들통나 퇴학을 당하고, 겐카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철로의 선로를 바꾸는 장난을 하는데 우연찮게 열차 전복사고가 일어난다.
이 일로 인해 발레르카는 할머니댁으로 도피를 하고 그곳에서 갱단의 사기에 넘어가 일본인 보석상을 터는데 가담을 하고 살인까지 목격하게 되는데
그를 걱정한 나머지 그를 찾으러 온 갈리아와 도망치려다 갈리아를 영영 잃고 만다.
이 영화 어디에도 우리의 시선을 잠시라도 따뜻하게 숨겨둘 만한 곳은 없다.
카네프스키 감독은 관객에게 잠시도 공상을 하거나 따뜻한 회상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화면 가득 시베리아의 회색빛 하늘이 낮게 그늘지고, 화면에선 금새라도 검은 탄가루가 은막을 뚫고 폐에 들어올 것 같다.
이 영화는 지루할만큼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어린 학생들은 오래전에 혁명가의 손을 떠나 관료들의 손에 쥐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우월함을 선전하기 위해 행진하고 거리는 진구렁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겐 승전의 기쁨보다 삶의 비참함이 가득하다.
발레르카는 기차를 탈선시켜 경찰에 쫓기고, 결국 갱단에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잠시동안 그에게 구원처럼 느껴졌던 갈리아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 구원조차 갈기갈기 찢겨버린다.
갈리아는 수레에 시체로 실려오고 갈리아의 어머니는 미쳐 나체로 빗자루를 타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생각난다.
"아, 씨발, 형님! 이 새끼들은 일진이 아니에요. 이 새끼들은 칼받이예요." 하는 대사와 함께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노래 소리('It is the End', 이 곡을 mp3로 보내준 후배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다.)
"내가 한 이야기가 거짓말(드라마)인 것 같지, 아니야 이건 엄연한 사실(다큐멘터리)이야” - <비탈리 카네프스키>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그 솔직함과 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이자
동시에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들을 남기고 있다.
감독 비탈리 카네프스키는 이 첫 장편으로 칸느에서 황금카메라상을 거머쥐는 행운을 잡았다.
54세의 늦은 나이의 감독 데뷔와 또 잇따른 성공, 강간범으로 8년을 복역했던 사내, 그리고 잠시 후 우리 귀에 들려온 소식은
그의 도벽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아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까이에 뒤 씨네마'가 선정한 2001년 시네아스트.
1935년 시베리아 스촨에서 태어난 비탈리 카네프스키는 전쟁 당시 설치된 한 포로 수용소의 근처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77년 영화 감독 학위를 취득하고 비엘로뤼쓰필름 스튜디오에서 단편 <네번째 비밀>을 찍는다.
그 후 ,몇편의 영화에서 조연출로 일한다. 81년엔 주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중편 <시골 이야기>를 찍는다.
89년엔 흑백 필름을 배급받아 <얼지마, 죽지마,부활할거야> 촬영에 들어갔고 이 영화는 90년 칸느에서 첫 장편 영화에 수여되는 '황금 카메라 상'을 받는다.)
그는 이 영화를 찍을 때 필름 살 돈이 없었던 나머지 친구들에게 조금씩 후원을 받아 한 장면씩 찍기 시작했고,
다시 찍은 필름을 보여주면서 다시 후원자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3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결코 배우라고 부를 수 없는 배우가 있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에서 발레르카 역을 맡았던 파벨 나자로프는 92년에 이 영화의 속 표편격인 <눈 오는 날의 왈츠>에도 주연으로 출연해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촬영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거리'로 돌아왔고 그의 실제 모습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세번째 영화 <우리 20세기의 아이들>에서는
감옥의 철창 밖으로 우울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유년의 3부작을 마감했다.
카네프스키 감독은 파벨 나자로프를 만나 캐스팅하기 까지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그는 레닌 그라드의 뒷 골목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자기보다 서너살 연상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꼬시고 있었다.
파벨 나자로프를 처음 보는 순간, 난 내가 13살 때의 모습을 보았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을 정면에 배치시켜 영웅으로 만들지도 않으며 대상화시켜 소외하지도 않는 독특한 시각을 유지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움직이지만 결국 이 영화는 그 영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화를 극영화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도 한 때는 뭐뭐했다"는 식의 대사를 많이 듣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군대 시절 이야기를, 어떤 이는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선배 뻘 되는 386 세대들(엄밀히 말하면 나도 그 끄트머리쯤 있는지도 모른다. 70년생, 89학번, 30대)이 이제는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다니는 지금,
나의 유년 시절은 어디쯤에 머물고 있을까?
나는 요새도 밤마다 누군가에 쫓기는 꿈을 꾼다.
대개 이런 꿈의 할머니식 해몽은 '키 크느라 그런다'는 것이다.
자, 그대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라. 정말 즐거웠는가? 아니면 고통스러웠는가?
<아이들은 모두 꿈을 꾸었는데, 어른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맞는 말인가.
아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꿈을 꾼다는 꿈을 믿었지만 아이들은 이제 꿈을 꾸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황폐하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우울한 환상일 뿐.
아이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자신들이 미처 꿈을 꾸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아름다운 유년이 아니라 박탈당한 유년이라 해야할 우리의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 영화는 다만 유년을 기억하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아, 난 정말 어렸을 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른들의 세계, 그곳에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불규칙적이고 부조리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이미 '길 위의 인생(life on the road)'인 것을,
어차피 길을 가야하는 사람에겐 터널도 길의 일부이다.
그리고 "오류는 오로지 방황을 통해서만 치유된다."<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시리즈는 비디오로 출시되었고,
그외 성장영화로 추천할만한 것들은 프랑수아 트뤼포 <4백번의 구타>,
빌 어거스트 <정복자 펠레>, 토드 솔론즈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그리고 늙은 어른의 성장영화인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추천하고 싶다.
(이병헌이 나오는, 해변 포구에서 아랍식 춤을 추던 카페라떼 CF는 이 영화를 패러디한 것이다.
'사랑한다면 카페라떼처럼'이란 광고 문구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성장영화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이 아름다웠다고 섣부르게 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끝내 백조가 될 수 없는 미운 오리 새끼들도 있기 때문에….
비탈리 카네프스키
(Vitali Kanevsky)
54살의 나이로 칸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은 그는 자신의 영화<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1989)의 주인공처럼 기구한 삶을 살았다.
25살 때인 60년에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입학했으나 42살이 된 77년에야 겨우 학교를 졸업했고, 66년부터 8년 반 동안 감옥에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였던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를 만들기 전에 그는 고작 두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을 뿐이었지만
이 영화 한 편으로 소련붕괴 이후 러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눈오는 날의 왈츠>(1991) , <우리, 20세기의 아이들>(1994)를 비롯해 단 세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발표했다.
그의 영화들은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가 되었다.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시네21 영화감독사전』 / 한겨레신문사/1999년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에이젠스테인에서 홍콩 느와르까지』 / 구회영 지음/ 한울/ 1991년
- 영화의 시대에 누구나 영화박사지만 어쩐지 홍콩영화가 좋다고 하면 공연히 주눅이 들던 시대가 있었다.
영화평론가들의 이론적이고 고리타분한 예술론이 지겨운 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자신감을 갖기 바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가 제일 좋은 영화라는 사실.
웃기는 비디오 가게 아저씨
-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에서 발췌해 온 80년대 걸작 영화 100편의 안내이다.(한글) <웃기는 비디오 가게 아저씨>라는 홈을 가보세요. 아주 좋습니다.
눈오는 날의 왈츠
- 눈 오는 날의 왈츠가 있다. 주변 것들도 잘 탐색해보시길.(한글)
출처:http://windshoes.new21.org/film-vital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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