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lvet Underground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미국 서부가 온통 환각제와 사이키델릭 록으로 흥청거릴 때, 동부에서는 대단히 지적이며 어둡고 실험적인 그룹이
나타났는데,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바로 그들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대단히 냉소적인 루 리드(Lou Reed)를 중심으로 적나라하고 퇴폐적이며 난해한 가사, 쓸쓸하고 우울한 목소리, 날카로운
소음의 도입을 주저하지 않는 거친 사운드로 평범한 관객의 사랑을 받기에는 거리가 먼 음악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연주하던 클럽에서 쫓겨나기
일쑤였고, 늘 돈이 아쉬웠다. 그런 그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앤디 워홀이다.
앤디 워홀은 실험 영화를 만드느라 돈을 많이 썼지만, 이익을 보진 못했다. 그래서 록 음악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바꿨을 때 마침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만났다. 그리고 빈털터리인 이 젊은 밴드를 적극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첫 번째 앨범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가 발표되었다. 니코는 앤디 워홀이 발견한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이자 모델로 워홀의 권유에 따라 이 그룹에 참여했다. 단 하루 만에
녹음된 이 앨범은 음악도 대중들에게 낯선 데다 녹음 상태마저 거칠어 외면을 받고 만다. 같은 해 비틀스가 거의 1년 가까이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엄청난 돈을 투자해 정교하게 만든 [서전트 페퍼 론리 하트 클럽 밴드] 앨범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앨범은 [서전트
페퍼]와 함께 늘 20세기 최고의 앨범커버로 기억된다. 나중에 음악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스테디셀러가 된 것은 물론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 앨범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밴드의 이름은 없고, 오히려 ‘앤디 워홀’이라는 커버 디자이너의 이름이
크게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이들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무명의 밴드이므로 그 이름이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후원자인 스타 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부각시키는 게 판매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것이다. 이는 물론 물주인 앤디
워홀의 판단이었다. 루 리드는 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아무도 우리를 알지 못했고, 우리에게 관심 갖지 않았다. 앨범커버에 선명한 앤디
워홀은 벨벳 밴드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워홀을 리드 기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앨범커버가 그토록 인기 있는 이유는 앤디 워홀이 디자인했다는 점도 있지만, 외설성도 큰 몫을 했다. 이 앨범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
노란색 바나나 옆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천천히 벗겨서 보시오.” 이 말 자체가 굉장히 외설스럽지만, 바나나 껍질 스티커를 벗기면
그 안에서 핑크색 바나나가 나오는 장치야말로 노골적인 남성 생식기 은유로서 당시 엄청난 혐오 대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이 앨범의 노래들은
라디오 방송에서조차 외면을 당했다. 앤디 워홀은 결국 이 장치를 제거했다. 그 이유는 비난 때문이 아니라 추가 인쇄 비용이 들어 이익률이
적어진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지금 발매되는 이 앨범에는 앤디 워홀보다 더 큰 글씨로 밴드 이름이 인쇄되어 있고, 스티커 장치는 없다. 따라서
초기에 발매된 앨범은 엄청난 고가로 수집가들의 컬렉션 대상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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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주간)
멤버
루 리드(Lou Reed, 보컬, 기타),
존
케일(John Cale, 베이스, 비올라),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 기타)
모린 터커(Maureen
Tucker, 드럼)
데뷔
1967년 1집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경력
1996 록큰롤 명예의 전당
출처: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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