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록은 1960년대와 대조적으로 사회성이 탈각되면서 개인적이고 고립적인 세계에 집중되었고, 많은 하위 장르로 분화 및 진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주류에 안착한 록은 팝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비즈니스로 자리잡았다.
록 뮤지션/밴드는 전세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펼치는 '백만장자 록 스타'가 되어 있었고,
동시에 예술적인 음악 세계를 펼치는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
이와 정반대의 흐름이 펑크라는 이름을 달고 1970년대 후반 몰아쳤다.
그리고 그 맨 앞에 섹스 피스톨즈가 있었다.
물론 섹스 피스톨즈가 최초의 펑크 밴드라는 단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7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는 이후 '프로토펑크(proto-punk)'라고 명명된 일련의 음악 흐름이 있었다.
라몬스(The Ramones)는 미국 최초의 펑크 밴드이고,
섹스 피스톨즈는 영국 최초의 펑크 밴드라고 얘기하는 것이 적합하다.
하지만 섹스 피스톨즈는 영국에서의 펑크 폭발을 견인했고, 대중적으로 펑크에 대해 정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거칠고 단순한 사운드와, 되는 대로 지껄이는 듯한 보컬은 지금까지도 펑크의 지배적인 인상으로 남아 있다.
섹스 피스톨즈의 활동 기간은 고작 2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 기간동안 이들이 남긴 흔적은 엄청나다.
복잡해지고 개인화되고 부유해진 록(큰롤)의 시대에 록(큰롤)이 원래 어떤 것이었는지를 일깨웠다.
이를 통해 록의 단순성과 반항성을 복원시키면서, 대중음악의 국면을 변환시켰다.
또한 이들의 음악과 활동이 남긴 효과 또한 적지 않다.
이들의 DIY(Do It Yourself) 에토스와 아마추어리즘은 이후 영미권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인디펜던트 음악이 존립하는 데 하나의 윤리가 되었다.
즉 이들의 음악이 인디(적인) 음악에 직접적인 음악적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태도와 발상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1970년대 중후반 영국 음악계와 사회를 뒤흔든 섹스 피스톨즈는 1975년에 결성되었는데,
서구의 68 혁명의 활동가 중 하나였던(나중에 이들의 매니저가 되는) 맬컴 맥라렌(Malcom McLaren)이 런던의 킹스 로드에 열었던 부띠끄 '렛 잇 록(Let It Rock)'이 그 모태였다.
이 공간에서 점원으로 혹은 단골 손님으로 만난 보컬 자니 로튼(Johnny Rotten: 본명은 John Lydon), 기타 스티브 존스(Steve Jones), 베이스 글렌 맷록(Glen Matlock), 드럼 폴 쿡(Paul Cook)은 섹스 피스톨즈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처음에 1960년대 곡들을 커버하다가 점차 자신들의 자작곡을 만들어 연주한 섹스 피스톨즈는 1975년 11월 런던에서 오프닝 밴드로 대중들에게 첫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 당시의 짧은 첫 공연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공연을 벌이면서 적지 않은 추종자들을 양산해냈고 동료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청중들이 난동을 일으키거나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잦아서 공연이 금지되거나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1976년 10월, 섹스 피스톨즈는 EMI와 계약하고 데뷔 싱글 'Anarchy In The UK'를 녹음, 발매했다.
12월 1일, 템즈 TV(Thames TV)의 [Today]라는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은 인터뷰 도중 비속어를 남발하였는데,
이 일이 이튿날 일간 신문 1면에 일제히 다뤄지면서 이들은 전국적인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EMI가 즉시 이들과의 계약을 파기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들은 아랑곳없이 'Anarchy' 전국 투어를 해나갔다.
1977년 2월 베이시스트 글렌 맷록이 탈퇴하여 시드 비셔스(Sid Vicious)로 교체되었는데, 이때 그는 베이스를 연주할 줄 몰랐다.
1977년 3월 섹스 피스톨즈는 AM과 계약하였으나 싱글이 채 나오기 전에 이들로부터도 계약파기를 당했고,
결국 그해 5월 버진(Virgin)과 계약하고 여왕을 조롱하는 싱글 'God Save The Queen'을 내놓았다(이 싱글은 BBC에서 방송 금지되었다).
또 엘리자베스 II세 즉위 25주년 기념의 날에 템즈강의 배 위에서 공연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연이어 싱글 'Pretty Vacant'와 'Holidays In The Sun'을 내놓은 이들은 11월에 드디어 첫 앨범인 [Never Mind The Bullocks - Here's The Sex Pistols]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많은 레코드점에서 진열을 거절했지만, 발매되자마자 차트 1위로 직행했다.
[Never Mind The Bullocks - Here's The Sex Pistols]는 록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 가운데 하나이다.
보컬은 노래라기보다는 되는 대로 말을 쏟아내는 듯하고, 사운드는 거칠고 난폭하면서 단순하다.
가사는 영국 기성 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빈정거림과 거친 분노를 담고 있다.
이처럼 단순한 악곡으로, 한 기성 체제에 대해 이처럼 불순하고 뻔뻔스럽고 귀에 거슬리게 표현한 록큰롤은 거의 없었다.
'Anarchy In The UK'와 'God Save The Queen'은 대표적인 곡들이다.
1978년 1월, 미국 투어에 나선 섹스 피스톨즈는 8일만에 투어를 접어야 했다.
보컬리스트 자니 로튼이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남은 멤버들과 매니저 맬컴 맥라렌은 밴드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해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자니 로튼은 자신의 밴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imited)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해나가는 한편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시드 비셔스는 1978년 10월 여자친구 낸시 스펭겐(Nancy Spungen)이 같이 묵던 호텔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어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었고,
그는 보석으로 풀려난 후 헤로인 과용으로 죽었다.
1991년부터 대중음악계에 불어닥친 얼터너티브 붐으로 섹스 피스톨즈는 간접적인 주목을 받았다.
얼터너티브의 모태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섹스 피스톨즈가 흩뿌린 펑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얼터너티브의 연장선상에서 1994년 그린데이(Green Day)와 오프스프링(Offspring)을 필두로 한 뉴 펑크(new punk)가 등장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좀더 분명해졌다.
이와 같이 1990년대 초중반 '펑크 부활'의 분위기가 고양되면서, 섹스 피스톨즈가 잠깐이나마 다시 활동할 토양이 마련되었다.
1996년 이들은 결성 20주년을 맞아 재결성, 세계 투어를 진행했으며 라이브 앨범[The Filthy Lucre Live]를 발매했다.
이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Great Rock Roll Swindle](1979)와 [The Filth the Fury](2000)가 있다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rientandy&logNo=8002886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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