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비는 1961년 7월 1일 훗날 스펜서 백작 7세가 되는 올소프 자작 에드워드
존 스펜서와 퍼모이 남작 4세의 딸 프랜시스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위로 두 딸아이를 둔 스펜서 부부는 그녀가 가문을 이어갈 아들이 아닌
것에 상당히 상심했다. 부모의 상심은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전달되어 다이애나는 어렸을 때 자신이 남자아이로 태어나지 않은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올소프 자작 부부의 근심은 4년 후 다이애나의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해소되었지만, 아이 때 느낀 자존감의 혼란은 다이애나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7살 때 일어난 부모의 이혼사건도 그녀의 소녀시절을 불운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양육권과 재산권을 둘러싼 지루한
법정싸움에 다이애나의 남매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어머니가 떠난 집에 남은 어린 다이애나와 남동생은 부모의 따사로운 손길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인형과 작은 생물을 돌보는 일에 집착했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행복을 느꼈다. 학업에서는 그다지 뛰어난 편이
못되었다. 언니 사라와 남동생은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수재였지만 다이애나는 평균 이하 정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고 이것은 그녀에게 또 다른
열등감이 되었다. 그녀는 발레를 좋아하고 요리와 청소, 아기와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에 능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런 재능을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주변의 사람들도 다이애나를 특기가 없는 그저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애나는 이 모든 일을 예민하게 느끼고 상처 입었지만, 겉으로 자신의 불행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귀족가문의 영양인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10대다운 반항이 아니라 속으로 삭이며 남들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뒷자리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돌보고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의
아가씨로 성장했다. 그녀의 이런 성격은 왕세자비가 된 후 갑자기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문제를 일으켰다. 엄격한 왕실에 적응 하는 것도,
대중 앞에 나서 왕세자비의 일을 수행하는 것도 모두 스트레스가 되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침범했던 것이다. 다이애나가 찰스왕세자를 처음 본 것은 그가 언니 사라의 남자친구였던 17살 때였다. 누구나 선망하는
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 다이애나가 느낀 감상은 그가 가여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언니 사라와 8개월간 좋은 만남을 이어가던 찰스왕세자는 사라와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다이애나의 시야에서도 사라졌다. 그로부터 3년 후, 다이애나는 가까스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 런던에서 여자 친구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막 직업을 구했고,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수다를 떨고 파티를 열고 클럽에 가는 생활이 한창 즐거운 스무 살이었다. 그녀는
이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이 뒤로 젖혀질 만큼 웃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귀족의 딸이라는 허울을 벗어 던지고, 독립한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인생을 마음껏 향유하기 시작한 다이애나 앞에 찰스왕세자가 다시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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